2012년 2월 3일 금요일

카드의 수난과 변신



카드의 수난과 변신


‘텐쇼-가루타(天正カルタ)’는 도박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에도막부(江戸幕府)는 칸세이 3년인 1791년에 이르러 드디어 대대적인 금지령(禁止令)을 내리게 됩니다. 이 카드를 보는 족족 수거하여 만인이 보는 앞에서 불태우는 등, 심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기에 이시기의 일본인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카드로는 놀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모방에 능한 일본 사람들이 그냥 있었겠습니까? 마침내 금지령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 즉 카루타(カルタ)를 만들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 스페이드의 네 기호와 숫자를 변형하여, 춘하추동의 화조풍월(花鳥風月)로 바꾸어, 도박용이 아니라 유희전용으로 보이도록 화려하게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바로 화투인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변화한 시기를 1818년~1843년 사이로 추정합니다만, 이 시기부터 카드는 서양에서 건너오긴 했지만, 모양과 형태, 그리고 놀이 방법이 바뀌어 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 이지요. 그렇다고 화투에 그려 진 그림들은 무턱대고 그려 넣은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전래되어온 ‘카이아와세(貝合わせ)’나, 예부터 전해오는 일본전통시가인 와카(和歌)의 내용을 근거로 숫자대신에 화조풍월(花鳥風月)등을 그려 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명칭도‘카이아와세(貝合わせ)’의 이름을 차용하여, 꽃이 그려져 있다하여‘하나아와세(花合わせ)’라고 불려졌으며, 차차 ‘하나가루타(花カルタ)’, 그리고 간단히‘하나(花)’라고도 불려졌고, 꽃 그림이 그려진 딱지란 의미에서‘하나후다(花札)’란 이름으로 불려지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 하나후다(花札)는 이름만큼이나 그림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였는지, 이 역시 폭발적으로 번져 나갔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하나후다(花札)’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었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통일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쇼-와(昭和)시대에 들어 와서라고 합니다.

아무튼 화투가 유행처럼 번져감에 따라, 폐단은 또다시 발생하기 시작 했습니다. 도박장을 개설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등, 비합법적인 행위가 횡행하였으며, 그 결과 화투의 도박적 색채는 더욱 노골화 되어, 결국 에도막부(江戸幕府)는 텐포(天保)시대에 들어 결국 재차 화투판매 금지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아마, 우리나라에 최초로 화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화투판매 금지가 취해졌던 기간 중인 19세기 말인 메이지시대(明治時代)초기로 보여 집니다. 이 시기의 우리나라는 한창 개방정책이 시행되던 시기로, 이 개방의 물결을 타고 일종의 국제무역을 하던 대마도 상인들이 심심풀이로 이 하나후다(花札)를 들고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화투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행하게 된 것은, 일본의 대륙 정책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화투 놀이가 금지 되었음에도, 군대 내부에서는 허락이 되었으므로, 당시 한국과 중국에 파견된 일본군대에서도 대유행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민족에게는 뼈아픈 기억이지만, 일본에 강제 징용 되었던 한국인이나 군속으로 참여했던 한국인들에 의해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화투는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화투의 폐해를 아신 ‘김구(金九)선생’께서도 화투퇴치를 부르짖기도 하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올 정도로 전국각지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던 것이지요.

아무튼 일본에서는 화투판매 금지조치가 지속됨에 따라, 이제 또다시 서양의 카드가 고개를 쳐들고 나돌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자, 외국에서 건너온 카드보다는 일본에서 변형된 일본풍의 하나후다가 유익하다고 판단했는지, 할 수 없이 메이지(明治)정부는 화투해금조치를 취하게 되었고, 이렇게 하여 화투는 일반 서민부터 상류 계층까지 널리 보급되어 가기에 이릅니다. 메이지(明治) 35년인 1902년에는 골패세법이 만들어져, 화투판매에 제제를 가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세금까지 부과할 수 있을 만큼 합법적인 놀이로 인식 되어버립니다. 아무튼 그 골패세법은 쇼-와(昭和) 32년에 트럼프류세법으로 그 명칭이 바뀌고, 헤이세이(平成)원년인 1989에 이르러서는 소비세가 도입됨으로 인해 트럼프류세법도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선 지금도 성인 셋만 모이면 화투장을 찾을 만큼 이 화투가 성행하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화투는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만 유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화투는 일본사회 저변에 이미 사회악(社會惡)이라는 이미지가 짙게 깔려있어, 가정용 놀이는 다시 카드로 옮겨가거나 일본전통놀이인 가루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우리사회에서는 카드의 이미지가 더 그러함에도 말입니다.

일본에서 화투가 멀어지기 시작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급속한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첨단기술로 발달된 오락용 기기에 밀려, 서서히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지금 일본에서의 ‘하나후다(花札)’는 ‘이로하가루타’와 더불어 정월용 놀이정도로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칸세이(寛政) : 일본 광격천황(光格) 때의 년호(1789.1.25-1801.2.5) 텐포(天保) : 연호(1830.12.10-1844.12.2) 쇼와(昭和) : 연호(1926.12.25-1989.1.7)。다이쇼(大正)이후, 헤이세이(平成) 전. 쇼와(昭和)천황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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